처음엔 ‘그냥 공을 던지면, 치고 달리는 게 전부’인 단순하고 조금 지루한 종목이라고 생각했어요. *1)2009년 WBC를 라이브로 보면서도 ‘잘하긴해도 역시나 지루한데?’ 했을 정도였으니까요. 그렇게 열광하는 팬들 사이, 하품을 참지 못했던 제가, 삼성라이온즈의 유니폼을 입고 매일 야구경기를 챙겨보게 된 계기에는 아버지가 계셨습니다.
대구였던 저희 집은 여느 경상도 집안이 그렇듯 말수가 적은 집이었어요. 특히 아버지와는 꽤 어색한 사이였는데요. 운동을 즐기시는 분은 아니셨지만, 야구만큼은 예외였죠. TV 리모컨은 늘 아버지 손에 있었고, 자연스럽게 야구를 함께 보는 시간이 많아졌어요. 처음엔 그런 시간들이 불편해서 자리를 피하곤 했는데 어느 날엔가 문득 궁금해 질문을 던졌습니다.
“야구 그게 왜 재밌는데?" “그냥, 시원하게 날리는 게 좋아서.”
그 짧았던 아버지의 대답이 이상하게 오래 남더라고요. 연고가 연고인만큼 아버지가 응원하시던 팀은 그때도, 지금도 시원시원한 타격을 자랑하던 삼성 라이온즈. 그렇게 한 경기, 두 경기 보다보니 어느새 저도 그 타격의 쾌감에 빠져들었고요. 자연스럽게 팬이 되었고, 왕조 시절엔 그 화려함에 푹 빠졌어요. 이기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던 시절이었죠. 그러다 대학 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야구와 조금 멀어졌는데요, 다시 야구를 찾게 된 건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였어요.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면서, 가장 먼저 생각난 게 야구였거든요.
헛헛한 마음을 채우려 다시 시작한 야구에서 뒤늦게, 그때 아버지의 대답이 다르게 이해가 가기 시작했습니다. “시원하게 날린다”는 말이, 그저 홈런의 통쾌함만을 말한 게 아니었더라고요. 아버지는 아버지만의 야구를 하고 계셨던 거예요. 늙어가는 몸, 버거운 현실, 무거운 책임감 속에서 단 한 타석이라도 시원하게 넘기는 상상을 하셨던거죠. 그게 아버지에게는 유일한 해방감이었는지도 모르고요.
특히 18년도 삼성라이온즈에서 묵묵하고 성실하게, 커다란 스윙으로 팀에 힘을 보태주던 외국인 타자 *2)‘러프' 선수를 보면서 아버지의 단단하셨던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고요. 그렇게 제겐 떨어져 있어도 그립고, 또 찾아가게 되는 가족의 역사처럼, 야구가 삶에 녹아져버린게 아닌가 싶습니다.
야구는 참 이상한 스포츠예요. 그저 공 던지고 치는 놀이처럼 보이지만, 그 안엔 누군가의 인생이 녹아 있어요. 시원하게 날리는 순간을 기다리며 매일을 버티는 마음, 그 하루하루가 누군가에겐 큰 위로가 되거든요. 우리의 야구를 하자. 삶이 꼭 잘 던지고 잘 치지 않아도, 끝까지 지켜보고 응원하며 기다리는 그런 야구요. 그게 제가 생각하는 야구예요.
*1) 2009년 당시 메이저리거가 즐비한 베네수엘라를 10:2로 승리, 박빙의 한일전 *2) 2017~2019 삼성라이온즈 소속 용병타자. 타격의 달인의 별명을 가진 거포 선수. |